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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전쟁, 34일간의 기록

경북지역 자원 나선 남민아 간호조무사 인터뷰

간호조무사신문 | 기사입력 2020/05/11 [15:25]

코로나19와 전쟁, 34일간의 기록

경북지역 자원 나선 남민아 간호조무사 인터뷰

간호조무사신문 | 입력 : 2020/05/11 [15:25]

  © 간호조무사신문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 간호조무사로 살아가는 남민아 씨, 그의 작은 소망은 그저 선을 따르면 약자도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리며, 차별 없는 세상에서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뿐이라는 그녀가 코로나19 사태에 영웅으로 변신했다.

 

남민아 간호조무사는 뉴스에서 연일 보도되는 대구·경북 지역 보건의료인력 부족 사태를 보고 선뜻 지원에 나섰다고 한다. 지난 34일간 그녀가 함께했던 안동의료원, 포항의료원에서의 기록을 인터뷰로 풀어보았다.

 

미쳤냐, 거기가 어떤 줄 알고 가느냐.’

 

가족, 친구, 연인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숱한 반대가 있었죠. 심지어 내려가는 날 배웅 나온 남자친구는 눈물까지 보이며 걱정하더라고요. (웃음)

 

Q. 간무사로 일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A. 4년가량 됐습니다.

 

Q. 자원을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텐데, 무엇이 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였나요?

 

A. 뉴스를 들을 때마다 대구경북이 심각해지고 도움이 절실하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려 바로 간무협에 급히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고 지원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코로나19에 대한 확진자가 급격히 확산되고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심각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국민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간호조무사로서 저를 필요로 하고 제가 못갈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가서 조금이라도 손을 보태 코로나19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 이였습니다.

 

Q. 어디로 얼마나 자원을 나가셨던 것인가요?

 

A. 311일부터 329일까지는 안동의료원에서, 330일부터 413일까지는 포항의료원에서 간호인력으로 일했습니다. 각각 19, 15일 총 34일 간 환자들을 위해 시간을 보냈습니다.

 

Q. 안동의료원에서 선생님의 하루는 어떠셨나요?

 

A. 첫날에는 데이 근무(오전 640분부터 오후 3)를 했습니다. 이튿날부터 마지막 날까지는 스프린트 근무(오전840분부터 오후 5)를 했습니다. 출근해서 일과는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경되긴 하지만, 오전에는 주로 아침 식사, 점심 식사 배분과 와상 노인 분들 식사 케어, 약 먹이기 도움 등의 간호를 했습니다.

상시적 업무로는 기저귀 케어, 와상 환자들 욕창 예방을 위한 체위 변경, 병실 폐기물 통과 박스 교체 및 병실 정리정돈을 수행했습니다.

 

그 외에도 퇴원환자 및 입원환자 발생 시 침상 정리정돈과 병실 및 화장실 청소, 환자들 이동 시 보조, 음압병실 투입 동료 방호복 착용 도움, 방호복 착의실 정리정돈 및 지원 물품 운반 도움 등을 했습니다.

 

Q. 포항의료원에서 선생님 하루는 어떠셨나요?

 

A. 도착한 날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했고, 다음 날 오후 음성 판정을 받아 즉시 이브닝 근무(오후 240분부터 오후 10)에 투입됐습니다. 그 이후로는 데이(오전 640분부터 오후 3), 이브닝, 나이트(오후 940분부터 오전 7) 근무 순환이 이뤄졌습니다.

 

포항의료원은 대부분 와상 노인 환자들이 줄을 이어 교대로 2시간씩 음압병동에 상주해 있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병실마다 환자를 살피고 기저귀 케어 및 상태 체크, 체위 변경, 식사, 약 투여 도움. 물 먹여 드리기, 침상 정리정돈 등을 했습니다. 휴식 시간에는 방호복 착의하는 공간에 대기하며 물품 정리정돈을 했습니다.

 

  © 간호조무사신문


Q. 일하시는 중에 자원한 것에 대해 후회가 되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

 

A. 집을 떠나 타지에서 그것도 모텔에서 생활을 이어간다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아침. 저녁 식사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데 대부분 간단한 포장 음식이나 라면을 모텔에 쌓아 두고 먹어야 했습니다. 열악한 식사와 숙박으로 매일 매일 반복되는 모텔 생활에 우울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의료원에서 동료들이 너무 잘 챙겨주시고 제가 개인적으로 하는 SNS에서 많은 분이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힘을 많이 얻어 그 시간을 즐겁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 외 업무 중에는 방호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하고 빈틈없이 막으면 입는 시간도 수십 분이 걸릴뿐더러 입고 음압병실로 들어서는 순간 숨이 막히고 머리는 띵해져 왔습니다. 피부는 짓눌려 전해오는 통증과 흐르는 땀, 눈물들이 범벅이 되는 순간에 앞은 습기로 가득 차 뿌연 상태에서 동료들에 의지하며 그곳에서 환자들의 손과 발이 되는 일들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퇴근해서 모텔에서 눕는 순간 떨리는 몸과 오한 그리고 몸살로 잠을 잘 수도 없는 상태로 몸이 으스러져 가는 기분으로 수일을 보낸 그 시간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Q. 그래도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었을까요?

 

A. 안동의료원에서 같이 근무했던 분들이 이렇게 바쁘고 힘들 때 멀리서 와줘서 우리가 덜 힘들고 함께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감사하고 하루라도 더 빨리 못 온 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치료 잘 받으시고 퇴원하시는 환자분들이 그동안 감사히 잘 있다 갑니다. 너무 잘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씀하시고 떠나실 때 그 뿌듯함은 비교할 데가 없을 정도로 기쁜 마음에 내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항의료원에서는 매일 음압병실에 상주하는 시간이 많아 환자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필요한 부분을 바로 해결해 드릴 수 있어서 작은 도움이지만 제 손 하나 더 거들어서 이분들이 그나마 잘 케어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할머니 할아버지 보살펴드리며 잘 왔다는 생각을 더 했던 거 같습니다.

 

Q. 조금 특별한 환자, 혹은 유독 기억에 남는 환자가 계실까요?

 

A. 할머니는 와상에 치매까지 있는 분이셨는데 말씀도 곧 잘하시고 노래도 잘 불러주시고 구구단 2단만 오로지 외우시는 분이 계셨답니다.

 

항상 출근해서 눈이 마주치면 어디서 왔는지, 뭘 타고 왔는지, 결혼은 했는지, 남편은 무얼 하는지 계속 궁금해하시고 매일 반복되는 질문을 누가 와도 항상 하셨답니다.

할머니께 노래 불러 달라고 하면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하면서 저도 몰랐던 노래도 알려주시고 그분이 노래 부르면 같이 계시던 다른 분들도 같이 노래해 침울할 수 있는 병실에 활기가 돋고는 했습니다.

 

저희 부모님 사시는 곳을 물어보셔서 영덕이라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의 아버님이 영덕에 사셨다고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영덕에는 미역이 맛있고 낚시도 많이 한다고 할머니 빨리 나으시면 저랑 영덕 가자고 했더니 계속 우시더라구요.

아버지 보고싶다고... 저도 눈물이 나서 땀 흘리고 눈물까지 흘리며 땀, 눈물범벅이 된 경우도 있었답니다. 지금도 그분이 불러주신 노래와 구구단 2단이 귀에서 맴돌곤 하네요.

 

Q. 차별 없이 정말 동지애로 뭉쳤던 간호사 선생님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사람이 계시나요? 계신다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A. 안동의료원에서 있을 때 첫날만 데이 근무 후 이튿날부터 스프린트 근무였는데

다들 3교대로 근무하는데 스프린트 근무가 3명 있었습니다. 지원 나온 저와, 의료원에 간호사 선생님과 의료원 치위생사 선생님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같은 근무시간에 있었기 때문에 더 일에 있어서 누구랄 것 없이 항상 내가 먼저라는 생각과 함께 행동하고 힘든 일도 쉬운 일도 함께해 더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지원 나왔다고 해서 누가 챙겨주고 알려주고 하는 거 없이 알아서 눈치껏 해야 하는데 두 분이 잘 알려주시고 꼼꼼히 챙겨주셔서 더욱더 감사히 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방호복으로 무장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막고 음압병실에 들어서서 조금만 일해도 땀범벅으로 고글에 습기가 가득 차면 서로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도 앞을 잘 볼 수도 없는 상황이 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항상 곁에 계셔준 두 분이 계셔서 서로 의지해서 무사히 별 탈 없이 일을 마무리하고 병실을 나올 수 있어서 엄청난 힘이 되어주어 하루하루가 감동이었습니다.

 

  © 간호조무사신문

 

Q. 간호조무사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A.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워 길게 적어봅니다.

 

봉사와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직업 정신을 가지고 진심을 다해 환자를 사랑과 정성으로 간호하는 사람입니다. 체계적이고 정확한 업무에 충실하고 동료애로 서로 감싸고 포옹해주는 그런 이들이 우리 간호조무사입니다.

 

Q. 지난 34일 어떤 의미였습니까?

 

A. 제 인생에 있어서 정말 소중하고 값지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일, 나쁜 일, 슬픈 일, 아픈 일, 기쁜 일, 말 그대로 희로애락 모든 걸 경험한 하루하루였습니다. 자원을 마치고 돌아와 자가격리한 14일에는 혼자만의 시간에는 만감이 교차하면서 눈물도 한없이 흘려보고 저 스스로 고맙다.’, ‘잘했다.’ 토닥토닥도 해주었습니다.

 

더불어 조금 더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조금 더 내가 나설 걸, 조금 더 이해할 걸 하는 아쉬움도 많이 들었습니다.

 

 

Q. 또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자원하실 생각인가요?

 

A. 다시 이런 사태가 발생해 자원해야 한다면 망설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물론, 다시는 이런 사태가 벌어져선 안 되겠지만, 또 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전 그때도 주저 없이 달려갈 것입니다. 그 위험한 현장에서는 내 감정을 묻어야 하고 오직 내 몸을 헌신하는 일에 몰두하는 우리는 보건의료인이자 간호 인력인 간호조무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절대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은 아닙니다. 누구라도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모두 저처럼 달려갔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격려하고 응원하고 고마워하시는 분들께 오히려 송구스럽고 부끄러워집니다. 저는 잠깐의 지원이었지만 아직도 현장에서는 몇 달을 고생하고 계시는 의료진과 그 현장에서 고생하는 많은 분에게 제가 더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Q. 이번 코로나19의 영웅은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A. 이번 코로나19의 영웅은 대한민국입니다.

우리는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할 것입니다. 코로나가 많이 진정되었지만 종식된 것이 아니기에 백신이 나오기까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우리 모두 같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같이 노력하고 같이 힘을 합치면 코로나19 빨리 종식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A. 현장에서는 의료진과 관계자분들이 노고로 피로가 많이 쌓여있습니다.

 

병원 관계자분들 그리고 각 시·도 관계자와 정부에서 관심 가져주시고 그분들이 지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원활히 환자 한 분, 한 분에게 최선의 치료를 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분들이 지치고 힘들면 고스란히 그 힘듦이 환자에게 전달됩니다. 고령에 와상 노인이나 치매 환자분이 많은 상황에선 제대로 치료받기 힘드십니다.

 

더 세심하게 돌봐야 하고 관찰해야 하는 분들이시기에 의료진과 관계자분들의 원활한 휴식과 업무환경을 만들어주셨으면 하고 감히 부탁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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